스코틀랜드 투표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마음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겨레에서 연재하고 있는 카이스트 전산학 박사과정생 김창대씨의 시리즈를 읽게되었다. 박사과정생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
과부 설움 홀아비가 안다고 김창대씨의 표현들이 가슴에 푹푹 박힌다. 너무 박혀서 오늘 아침은 침대에서 보냈다면 핑계일까... 그래 하루 쯤은 천천히 나가도 세상이 무너지진 않겠지...
2014.8. 21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났다"
http://scienceon.hani.co.kr/187553
창의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의 탄생>[1]이란 책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13가지 방법을 알려준다. 관찰, 추상화, 감정이입, 모형 만들기, 변형, 통합 등등.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창의적인 생각들의 13가지 분류일 뿐이다. 예를 들면, 아이폰은 컴퓨터(정확히는 아이팟)와 전화기를 합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다. ‘통합’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와 ‘전화기’를 통합한 것이 핵심이다. 아무거나 통합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것은 아니다.
현대 무용가 트와일라 타프도 책을 통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했다.[2]창의력이야말로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라고 하기도 하고, 먼저 기술과 테크닉을 가져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한다. 아이디어는 공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고 하면서 또한 행운이 필요하다고도 한다. 세 줄 요약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을 익혀라. 아무 거나 마구, 계속 시도해봐라. 새로운 게 하나쯤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은 언제 나오는 것인가?
카이스트 한동수 교수는 ‘느긋한 몰입’을 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강조한다.[3] 하지만,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바쁘게 일을 하거나, 게임에 열중할 때 뭔가가 생각날 리는 없지 않은가.
공식을 만드는 데 공식은 없다. 새로운 것이 나오는 데 정해진 방법은 있을 수 없다. 공식을 대입해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창의적 활동은 아니지 않은가. 정해진 방법대로 생각해서 나온 것을 새롭다고 보는 것도 좀 이상하다. 물론, 위에 언급한 책에서도 그랬듯이, 새로운 생각들을 정해진 방법으로 분류해 볼 수는 있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발명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4]거나 ‘창의력도 노력하면 키워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연습하면 더 많이 커진다.’[5]고 하는 사람도 있다. 창의력을 훈련할 수 있다는 책도 나온다.[6] 다분히 신자유주의적인 메시지다. ‘누구나,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새로운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쓸모가 없었을 뿐이지. 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더 새로운 생각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더욱 기괴했을 뿐이지.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음먹을 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슬럼프를 겪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창의력에 대한 수많은 책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주제의 책이 나오고, 계속해서 팔리기까지 한다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소수라는 데 대한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과학자에게도 뮤즈[7]가 필요하다. 뮤즈를 향한 기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카페에서 우아하게 생각에 잠겨도,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느긋한 몰입을 해도, 산책하며 찬바람에 머리를 식혀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뮤즈가 속삭이고 떠난다. 그 순간, 누가 더 귀를 기울이고 누가 더 재빠르게 받아 적어내려 갔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뮤즈는 원래 학문과 예술의 신이라고 한다. 예술가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신과 거리가 먼 ‘과학’이란 분야에서 그리스 신화를 끌고 들어온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세계 70억 인구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내고,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해내는 것이, 결코 나만의 능력으론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밤하늘을 보며 우주 끝을 상상할 때 같은, 영화 <그래비티(Gravity)>에서 그려낸 그런 막막함이 나를 짓누른다. 기도할 대상이라도 필요하다.
지도교수님께서 도와주지 않느냐고? 물론 도와주시긴 하지. 하지만 교수님이 명확하게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이라면, 이미 연구가 아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밝혀내야 연구다.
그리고 난 마침내, 화장실에서 뮤즈를 만났다.
...
연구실에 돌아와 앉았다. 힘이 빠진다.
먼저, 아이디어가 너무도 평이하게 취급받은 까닭이다. 계속 해 보라셨으니 무시당한 건 아니지만, 그제 내 가슴을 뛰게 했던 아이디어가 아무 칭찬도 못 들으니 힘이 빠졌다.
또, 여전히 머나먼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논문에서 일부를 바꾼, 어찌 보면 간단한 아이디어이지만, 이것을 구현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 실험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통해, 내 아이디어가 쓸모없다는 것만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나는 9999번의 실패를 한 게 아니고, 다만 전구를 만들 수 없는 9999가지의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9999번의 실패를 하게 되면, 나는 재학 연한 초과로 인해 박사를 받지 못할 것이다. 이미 박사 4년차, 실패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한 발짝도 떼지 않는다면 영영 미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틀린 길로 가보는 것이 가만있는 것보다는 빠르다. 검색창에 ‘Gem5’를 입력했다. 연구를 시작하려고.
2014. 5. 2. "책상 정리와 연구 사이의 상관관계는?"
http://scienceon.hani.co.kr/164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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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오랜만에 의욕을 가지고 연구실에 와서 책상 앞에 앉은 지금, 내 결론은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다”였다. 키보드 앞에 팔을 올려놓을 공간만 겨우 비어 있는 책상. 각종 잡동사니들과 논문들과 책들이 난잡하게 쌓여 있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해놓기 위해 사다 놓은 서랍장은 또 하나의 거대한 잡동사니가 되었을 뿐이고 논문들을 정리해놓기 위해 사다 놓은 서류함은 이면지 보관함이 되어버렸다. 아니 논문은 양면인쇄를 하니까 이면지조차 아니구나. 정리정돈을 위해 사다 놓은 물건들이 되레 또 하나의 쓰레기가 되어있다.
정리를 시작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연구를 시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믹스커피를 타 마시고 내버려둔 종이컵 두 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초콜릿 까먹은 종이껍질 세 개와 귤껍질도 쓰레기통에 넣었다. 널브러진 펜과 지우개들은 서랍장 속에 일단 넣고 책들은 다 책장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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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9 "학교는 조용한데 인터넷은 시끄러운 선거철이다 - 소설" 中
http://scienceon.hani.co.kr/168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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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한다. 먼저 자신을 수양해야, 한 집안을 바르게 할 수 있고, 그 후에야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상은 단계적이지 않다. 우리가 수신을 하고 있는 사이에 부모님의 벌이는 줄어들고 선거일은 다가오고 다른 나라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난다.
박사과정이란 게 어찌 보면 고3 수험생처럼 자기 공부에 좀 더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긴 하다. 부모 봉양은 잠시 미뤄두고 “몇 년 만 더 참아. 내가 팽팽 놀게 해줄게”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만 해야 하는 시기다. 하지만 투표권을 가진 성인으로서, 게다가 지식을 쌓는 것이 업인 사람으로서의 책무는, 미뤄두기엔 너무 현재적이다. 당장 우리 대학 국고보조금에 대한 것이고 우리 연구실 연구비에 대한 것이고 아이스크림 가격에 대한 것이고 버스 요금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그 책무를 적극 감당하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느 당에 들어가 활동하거나 사회단체에라도 참여하기엔 시간이 없다. 물론 연구를 대단히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구실에 붙어 있기는 해야 하거니와, 그런 일들을 한다고 해서 남은 시간 동안 연구에 집중하게 될 리도 만무하기에. 그렇다고 투표로 세상을 바꾸자니, 내 영향력은 4000만 분의 1일 뿐이다. 내가 서울 시민이니 서울시장 선거만 고려한다 해도 844만 분의 1, 투표율이 50%가 안 되는 나쁜 상황을 가정해도 400만 분의 1이다.[5] 내 한 표로 세상을 바꿀 순 있긴 한 걸까. 투표가 아니라 여론이 세상을 바꾸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SNS 시대, 직접 민주주의를 부활시킬 수 있는 인터넷 시대이다. 하지만 모두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실상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흐드러지는 트윗들은 그대로 흐트러지곤 한다. 주옥 같은 트윗에 눈길이 머무르는 시간도 평소의 스크롤 속도에 좌우될 뿐이다.[6] 게다가 애초에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골라 듣는 SNS에서, 내가 어느 누구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까? 당장 나부터도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은 언팔 하곤 하는데.
무기력한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는데 나만 나이가 들고 책임이 더해진다. 생각해보니 이것이 정치 이야기만이 아니다. 내 논문, 내가 무기력해 하는 사이에, 연차만 더해지고 부모님이 나이가 드신다.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는….
2014.5.15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건지, 시간이 날 관리하는 건지..."
http://scienceon.hani.co.kr/165776
...조교 일이 끝나면 또 얼마지 않아 다음 일정이 있다. 그리고 또 다음 일정이 있다. 그 일정들 사이에는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분명 내가 결정한 일정들인데,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건지 시간이 날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교를 하는 동안, 그러니까 모르는데 열심히 하는 학생을 돕는 동안만은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내가 관리하는 시간은 아닐지라도, 순전히 학생이 질문하려고 올린 손만 바지런히 쫓아다녀야 하는 시간인데도, 내 존재가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잘 살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수많은 일정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그것의 관리를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효율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인생에도 탐욕 알고리즘이 통한다면, 지금 이 한 순간의 의미를 찾는 것이 궁극적인 최적일 텐데 말이다.
이 링크는 지금까지 연재된 글들이 수록되어있는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holypsychowri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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