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Thoughts'에 해당되는 글 40건

  1. 2015.11.07 Henry A. Kissinger and Klemens von Metternich
  2. 2015.08.09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Youtube)
  3. 2015.08.09 Slavoj Zizek
  4. 2015.08.09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5. 2015.08.07 조훈현
  6. 2015.08.05 조훈현
  7. 2015.07.12 디에고 리베라전 감상
  8. 2015.06.24 제대로된 번역의 중요성
  9. 2015.06.24 제대로된 번역의 중요성
  10. 2015.06.21 Political Cynicism. Are We Content?

Henry A. Kissinger and Klemens von Metternich

[생각]Thoughts 2015. 11. 7. 18:20

Henry A. Kissinger, A World Restored: The Politics of Conservatism in a Revolutionary Age (New York: The University Library, 1964).


Chapter II. The Continental Statesman 中

Klemens von Metternich

'He was a Rococo figure, complex, finely carved, all surface, like an intricately cut prism. His face was delicate but without depth, his conversation brilliant but without ultimate seriousness. Equally at home in the salon and in the Cabinet, graceful and facile, he was the beau-ideal of the eighteenth-century aristocracy which justified itself not by its truth but by its existence.' (pp. 8-9)


p. 8

'Like the state he represented, Metternich was a product of an ag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cended... born in the eighteenth century of which Talleyrand was to say that nobody who lived after the French Revolution would ever know how sweet and gentle life could be. Contemporaries might sneer at his invocation of the maxims of sound reason, at his facile philosophizing and polished epigrams. They did not understand that it was an accident of history which projected Metternich into a revolutionary struggle so foreign to his temperament...'

p. 9

'It was this man who for over a generation ruled Austria, and often Europe... he came to use the proudest claim of the Enlightenment, the belief in the universality of the maxims of reason, with increasing self-consciousness as a weapon in the revolutionary struggle. Had Metternich been born fifty years earlier... He would still have played at philosophy, for this was the vogue of the eighteenth century, but he would not have considered it a tool of policy. But, in a century of seemingly permanent revolution, philosophy was the only means of rescuing universality from contingent claims.'

pp. 10

"Society has its laws just as nature and man. It is with old institutions as with old men, they can never be young again... This is the way of the social order and it cannot be different because it is the law of nature... the moral world has its storms just like the material one." (Metternich, Clemens, Aus Metternich's Nachgelassenen Papieren, 8 Vols. Edited by Alfons von Klinkowstroem. (Vienna,1880). Vol. III, p. 322. Henceforward referred to as N.P.)

"One can not cover the world with ruins without crushing man beneath them." (N.P., VIII, p. 184)

"My point of departure is the quiet contemplation of the affairs of this world, not those of the other of which I know nothing and which are the object of faith which is in strict opposition to knowledge... In the social world... one must act cold-bloodedly based on observation and without hatred or prejudice..." (N.P. VIII, p. 184)

pp. 10-12

'This was the myth of the philosopher-king, the ideal eighteenth-century ruler, who stood above the plane where personal feelings reign, cool, composed, superior. Statesmanship was the science of the interests of states (N.P. I, p. 33), and subject to laws entirely analogous to the laws of the physical world. The statesman was a philosopher who understood these maxims, who performed his tasks but reluctantly, for they deflected him from the source of the only real enjoyment, the contemplation of truth; he was responsible only to his conscience and to history - to the former because it continued his vision of truth, to the latter because it provided the only test of its validity.

The reaction against Metternich's smug self-satisfaction and rigid conservatism has tended to over a century now to take the form of denying the reality of his accomplishments. But a man who came to dominate every coalition in which he participated, who was considered by two foreign monarchs as more trustworthy than their own ministers, who for three years was in effect Prime Minister of Europe, such a man could not be of mean consequence. To be sure, the successes he liked to ascribe to the moral superiority of his maxims more often due to the extraordinary skill of his diplomacy. His genius was instrumental, not creative; he excelled at manipulation, not construction... Napoleon said of him that he confused policy with intrigue... Friedrich von Gentz, for long Metternich's closest associate, has left probably the best capsule description of Metternich's methods and personality: "Not a man of strong passions and of bold measures; not a genius but a great talent; cool, calm, imperturbable and calculator par excellence."(Srbik, Heinrich von, Metternich der Staatsmann und der Mensch, 2 Vols. (Munich, 1925), Vol. I, p.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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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생각]Thoughts 2015. 8. 9. 12:15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그러니 아직은 게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111)


반외팔목

"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바로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불만을 갖고 환경 탓을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여기가 최선의 자리라고 생각하고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117)

"바둑 경언 중에 '반외팔목(盤外八目)'이라는 말이 있다. 직역하자면, 바둑판 밖에서 보면 8집이 더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불안, 초조, 욕심 등으로 인해 눈앞에 있는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 비유하는 말이다.

바둑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한다. 바둑판 가까이에서 들여다볼 때는 자신이 불리한 것처럼 여겨지는데 멀리 떨어져서 보면 오히려 앞서고 있다. 나중에 복기를 하면 그때서야 왜 내가 그것을 못 봤을까 후회를 한다."(118)


오만에 빠지지 말고, 끝없이 실력을 기르는

" 초보들은 이런 능력이 부족하다. 초보들은 패싸움이나 대마싸움 같은 작은 부분에 집착하여 전체를 보지 못한다. 바둑을 둬본 사람들은 19로의 바둑판이 얼마나 넓은지 잘 안다. 정말이지 수많은 변수가 있고 분할된 여러 구역이 있다. 한쪽에서는 치열하게 공격을 해야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필사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고, 또 다른 한쪽은 돌을 포기하고 훗날을 도모할 것인지 끝까지 사수할 것인지를 결단해야 한다. 게다가 구역들은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연결된다. 고수가 된다는 건 서서히 이 연결 고리를 깨우치는 것이며 스스로 그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바둑판 위에 있는 모든 돌이 다 쓰임새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를 리더십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고수는 자신의 돌의 리더가 되어 바둑판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 초보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순식간에 통제력을 잃는다. 아직까지 이런 총체적 위기를 관리하기에는 판단력도 리더십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바둑 초보들은 자신에게 이러한 약점이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기본 분석과 이론 암기, 그리고 실전을 통해 부족함을 메우면서 승단을 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무엇보다 상급자에게 깨져가며 한 수 배우는 것만이 실력을 기르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바둑의 세계에서 상급자는 나이와 성별을 막론하고 모셔야 할 선배다."(133-134)


위기십결, 버리기

"바둑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면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당나라 현종 때 기대조(棋待詔)를 지낸 왕적신(王積)이 지은 글로 '바둑을 두는 10가지 비결'을 담고 있다.

위기십결 중에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조항이 5번째인 '사소취대(捨小就大)'일 것이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뜻이다"(137)

"위기십결에는 이처럼 버리는 것에 대한 조항이 많다. 여섯 번째 조항인 '봉위수기(逢危須棄)'도 '위험을 만나면 모름지기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격언이다. 마지막 조항인 '세고취화(勢孤取和)'도 세력이 고립되면 조화를 취하라'는 뜻으로 저항하다 전멸당하기보다는 화합하여 후일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꼭 바둑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연연해하는 것들을 하나씩 버리고 포기하는 게 오히려 약이 되고 득이 된다는 지혜를 나는 바둑에서 터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에게 갑자기 찾아와서 이런저런 제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제안들은 솔깃했고 수락만 하면 적잖은 이익도 주어졌지만 그렇다고 덥석 물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그것이 나의 바둑에 주는 영향을 생각해야 했고, 또 나의 평판도 생각해야 했다. 모든 것을 고려해서 아깝지만 거절한 경우가 수락한 경우보다 훨씬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그때의 거절에 아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역시 내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제적인 이익보다도 나에게는 바둑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런 제안들을 수락했다면 아마도 나는 바둑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내 것이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 떄로는 더 큰 이익을 위해 아끼던 돌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질 것 같지만 모든 기회는 한번뿐이다. 그 기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금의 선택이 다음의 기회에 영향을 준다. 당장 주어진 기회는 달콤하다. 그러나 그것이 훗날 더 큰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고, 오히려 그걸 버려야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멀리 떨어져서 판을 구석구석 읽으면 정답이 보일 것이다.

선택하지 못한 고민, 마무리 짓지 못한 인간관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얽매여 있는 물건, 기억, 감정 등을 훌훌 털어버리자. 몸과 마음이 가벼워야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뛸 수 있다."(138-140)


멀리보기

"바둑에서 악수는 절대로 두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인생은 다르다. 악수인지 알면서도 놓아야 할 때가 있다."(141)


복기

"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괴롭기만 한 복기. 그럼에도 우리는 복기를 해야 한다. 복기를 해야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알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기를 잘해두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고, 또 좋은 수를 더 깊이 연구하여 다음 대국에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복기는 바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승부의 세계에서 복기는 기본이다.

자신이 실수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바라보는 건 어떤 심정일까. 아마도 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승부사들은 오히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승리는 오직 실수를 인식하고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야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복기의 의미는 성찰과 자기반성이다. 이것은 깊이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며 겸손과 인내를 요구한다. 프로 기사들이 승부사로서 다소 공격적인 성향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품성이 좋은 이유는 어려서부터 복기를 통해 꾸준히 자아성찰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아파도 뚫어지게 바라봐야 한다. 아니 아플수록 더욱 예민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실수는 우연이 아니다. 실수를 한다는 건 내안에 그런 어설픔과 미숙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미숙한 어린아이 상태로 살아가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정하고 바라보자. 날마다 뼈아프게 그날의 바둑을 복기하자. 그것이 나를 일에서 프로로 만들어주며,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시켜줄 것이다."(174-176)


고독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263)

"어느 철학자는 "강자란 보다 훌륭하게 고독을 견디어 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고독할수록 자유롭고 고독할수록 강하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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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생각]Thoughts 2015. 8. 7. 10:08

"그 근성이란, 바로 생각이다.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그리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식과 상식, 체계적인 사고, 창의적인 아이디어.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약 세상사가 바둑판과 같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당장은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악화될 것처럼 보이지만, 의지를 갖고 바라본다면 해결책은 반드시 있다. 물론 그 해결책이라는 것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일 수는 없다. 최상이 아니라면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혹은 양보와 타협을 하거나 깨끗이 포기하고 다른 목표로 옮겨가는 것 역시 일종의 해결책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날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고 회피하고 외면한다.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이전에 먼저 지쳐버려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행동한다. 바둑으로 치자면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아무데나 돌을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바둑 기사들은 절대로 이렇게 생동하지 않는다. 초읽기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집요하게 다음 수를 고민한다. 설사 끝이 보이는 바둑이라 하더라도 돌을 던지기 전까지는 한 수 한 수 최선을 다 한다. 호수(好手)가 아니라면 묘수(妙手)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惡手)나 과수(過手)라도, 치열하게 고민하여 스스로 선택한다...

바둑은 승부가 걸린 게임이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처하든 해결하기 위해 갖은 수를 생각내야 한다. 때로는 벼랑 끝으로 몰리기도 하고, 때로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저지른 실수로 큰 희생을 치러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목표는 바뀌지 않는다. 즉 이기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조훈현 (2015)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中 (pp.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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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생각]Thoughts 2015. 8. 5. 15:54

살아있는 전설의 기사 조훈현 홈페이지 http://www.chohunhyun.com/


조훈현 에세이 중 


"산이 좋아 산에 사네

선계(仙界)와 속계(俗界)는 무엇으로 구분될까?
의외로 차이는 간단하다.
사람(人) 변에 뫼(山)가 붙으면 신선(仙)이 되고 계곡(谷)이 붙으면 속인(俗)이 되는 것 아닌가?
바꾸어 말해 사람이 산으로 오르면 신선의 경지에 달하게 되고, 계곡으로 내려가면 저잣거리의 중생이 된다는 뜻이다."


"의인(義人)과 죄인(罪人)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자신을'죄인이라고 믿는 의인'이 있고 자신을'의인이라고 꿋꿋이 믿는 죄인'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의미심장하고 핵심을 찌르는 수사(修辭)가 아닌가?" 


"기록(記錄)은 기억(記憶)보다 강하다

어느날 신문을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한 카피 한 줄.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
되새겨 볼수록 감칠 맛이 나는 명언이었다.
프로기사의 바둑은 기보(棋譜)로 남는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 분야의 직업보다 기록에 민감하고 기록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말그대로 기록에 죽고 기록에 사는 특수한 직업인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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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전 감상

[생각]Thoughts 2015. 7. 12. 16:06

대학교때 접한 예술가 중 강렬한 임팩트를 느꼈던 사람이 바로 프리다 칼로다. 우습게도 그 이유는 첫 번째가 개인적으로 쇼킹했던 그녀의 일자형의 숱 검둥이 눈썹이었고, 두 번째가 그 다음 알게 된 그녀의 초창기 작품들에 담긴 스토리였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겪은 전차사고 이후 서른 번이 넘는 재수술을 하면서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그렸던 것들이다. 사고 당시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그녀의 몸은 거의 으스러졌고, 버스의 쇳조각이 그녀의 상체부분을 뚫고 들어가 자궁을 관통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녀의 작품 중, 하얀 침상을 둘러싸여 분리되어 그려진 그녀의 신체부위, 특히 자궁의 묘사 등에 담긴 그녀의 고통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Frida Kahlo, "Hospital Henry Ford" (1932)


그리고 셋째는 그녀와 디에고 리베라의 스토리였다. 그녀가 말했듯 그녀의 인생엔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던 셈인데, “하나는 전차 사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민중화가로 알려져 있던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를 만난 이후 사랑에 빠져 스물한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리베라는 그녀를 두고 잦은 외도를 하여 결국 그녀의 결혼생활은 맞바람을 포함한 이혼과 재결합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전차사고와 빗댈 만큼의 고통이었겠지만 바로 여기에서 또 한번 그녀의 작품세계가 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그런 고통을 다시 한번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한 배경 속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 위에 리베라의 얼굴이 겹쳐져 있거나 원숭이에 둘러 쌓여 있는 것, 자신의 얼굴을 한 사슴이 10개의 화살에 꽂혀있는 것 등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Frida Kahlo, 'Self Portrait as a Tehuana'(1943)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Monkeys'(1943)


Frida Kahlo, 'The Wounded Deer'(1946)


이번 전시에 게재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디지털 프린트 버전)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세계가 폄하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의 섭타이틀인 프리다 칼로와 멕시코가 사랑한 열정의 화가를 보면서 바로 프리다 칼로의 대형사고를 떠올리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벽화들은 20세기 초반 멕시코 사회의 혼란 속에서 국민들의 단결을 모색할 수 있는 멕시코의 벽화운동-대중문화운동으로 큰 역할을 하였고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활동한 그의 작품들은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냈다.

이렇게 다시 접하게 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을 보면서 새로 느낀 것이 너무도 많다. 대학교 시절 지금보다도 훨씬 무지했을 때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들은 엄청난 독창성이라기 보다는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너무 많은 것을 한 곳에 모두 담으려는 듯한, 고전주의 미술같이 뭔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만 했다. 아니면 종군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들에 우연히 담긴 엄청난 시대상처럼, 어떻게 보면 그저 시대를 잘 만난 운 좋은 화가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십자로의 남자’(1934, Palacio de Bellas Artes)를 기점으로 리베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벽화 가장 중심부엔 그려진 두 타원은 과학과 산업화, 이를 통한 인간의 진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주변부에 그려진 인물들은 대부분 이 중심부를 바라보고 있어서 관람자의 이목을 다시 이 중심으로 쏠리게 하고, 좌우의 인물들의 대립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만든다. 그림의 좌의 인물들은 부르주아사회의 어두운 면을, 오른쪽의 인물들은 노동자들과 사회주의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오른쪽 구석에 리베라가 그린 마르크스, 엥겔스, 트로츠키 등의 그림은 조금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유머러스 하기까지 하다.


십자로의 남자’(1934, Palacio de Bellas Artes)


여전히 나는 너무 추상적인 그림들은 너무 어렵고, 리베라처럼 직설적이고 서술적인 그림들은 단조롭거나 조금은 단순한 면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 둘 보다는 그 중간쯤에 있는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선호와는 별개로 이 작품의 시대상과 리베라의 세계관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한 이후에 보는 그림에 대한 내 자세는 매우 달라지지 않은가 싶었다. 또한 작가의 세계관과 나의 생각이 동일하지는 못할지언정, 이런 작품을 보면서 예술가의 작품세계와 사회과학자들의 연구의 폭이 그렇게 넓은 것이 아니란 것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사회과학을 예술로 표현해 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이제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목적이 있는 삶. 공부. 예술나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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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된 번역의 중요성

[생각]Thoughts 2015. 6. 24. 11:05

"원문의 섬세한 뜻을 잘 살려 번역하려면 원래 맥락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2013년 안전행정부로 이름이 바뀐 행정안전부가 기획하고 한국방송이 제작한 애국가 영상의 2절을 보면 '남산 위의 저 소나무'의 배경으로 서울타워가 있는 남산이 나온다. 이건 남산이라는 원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애국가에 나온 남산은 고유한 명칭인 서울 남산이 아니라 어느 고장에 있는 야트막한 앞산(보통 명사)를 가리키기 때문이다."(85)


"섣부른 추측이 초래하는 결과는 대개 좋지 않았다. 2011년에 목포 유달산 공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산 중턱에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 노래비가 있다. 노래비에는 1935년 음반을 처음 낼 당시 노랫말과 1965년 이후 바뀐 노랫말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1935년 취입 당시:   삼백련 원안풍((三栢淵 願安風)은 로적봉 밋헤...

1965년 이후: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바뀐 가사를 보며 나느느 우너래 가사를 부리기 편한 대로 고쳐 버린 사람들의 무성의함과 천박함을 나무랐다. 아마도 동백나무 세 그루가 있는 연못에 부는 산들바람을 표현한 듯한 '삼백련 원안풍'을 원래 가사 그대로 불러야 하는데 그저 대강 들리는 대로 '삼백 년 원한 품은' 이라고 함부로 추측하는 건 창작자에게 누를 끼치는 일 아닌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의 환경이 점차 오염되는 것과 무척 비슷해 보였다... 정보가 믿을 만한지 확인하다가 아뿔싸,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알게되었다.

목포의 눈물은 임진왜란 시기까지 올라가야 그 의미를 드러낸다. 충무공 이순신은 수가 적은 아군 병력으로 대부대인 왜구를 막아 내기 위안 묘안을 냈다... 삼백 년 후 조선에는 일제 강점이라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 슬픈 역사를 애절한 목소리로 전한 가수가 이난영이다. 일제는 이 노래를 지은 작사가를 소환해 취조했는데 검열을 피하려고 작사가는 해당 구절이 건전한 내용을 지닌 '삼백련 원안풍'이라고 주장했고 검열을 통과한 공식 가사도 그렇게 확정됐다. 그렇지만 조선 사람 어느 누구도 그 대목을 '삼백련 원안풍'으로 듣거나 부르지 않았다. 갖은 악조건을 딛고 노래 창작자와 청중은 의사소통을 온전하게 완수했다."(114-115)


이강룡(2014)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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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된 번역의 중요성

[생각]Thoughts 2015. 6. 24. 10:52

“자기 전문 분야나 관심사에 해당하는 순화어가 나오면 우스꽝스러워 보일지라도 킬킬거리지 말고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여 더 나은 표현을 궁리해 보자. 언중이 현명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더 나은 용어가 표준어를 대체하면, 우리 다음 세대는 더 정돈된 표준어를 배우게 된다. 표준어는 늘 변한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게 하거나 잘못 바뀐 것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도둑고양이는 널리 쓰이는 익숙한 표현이지만,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오래 키워 본 사람은 이 말을 쓰지 않는다. 더 무난하고 좋은 표현을 궁리한다. 그래서 ‘길고양이’가 대안으로 나왔다… 표현 방식에는 글쓴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잡초나 잡목이라는 표현을 쓰는 데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쓰임새로만 식물을 구분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표현이 좋지 않는 건 차별을 용인하기 때문이다… 어떤 매체에서 기사에 미혼(未婚)이라는 말 대신 비 혼(非婚)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 매체의 관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98년 무렵에 ‘미전향 장기수’는 ‘비전향 장기수’로 바뀌었다. ‘아직 전향하지 않은’이라는 고압적 태도에서 물러서 ‘전향하지 않은’이라고 담담하게 표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전자 조작 밥상을 치워라』에 나온 표현으로 설명하자면 저 칼럼의 저자는 ‘유전자 수정 유기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라는 기존 표현에 반기를 들고 ‘유전자 조작 유기체’(Genetically Manipulated Organism)라고 표현하자고 주장할 것이다.”(77-80)
- 이강룡 (2014)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 http://readme.kr 여기에 가면 이강룡의 번역노하우를 더 배울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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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itical Cynicism. Are We Content?

[생각]Thoughts 2015. 6. 21. 21:40

“Wer sich nicht mit Politik befaßt, hat die politische Parteinahme, die er sich sparen möchte, bereits vollzogen”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람은 이미 자신이 그렇게 피하고 싶어 했던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 ― Max Frisch, Tagebuch 1946-1949.

Can we be content, proud of our cyn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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