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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Research

규범과 실증에 대하여 (1)

과학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끼는 점은, 현대의 연구를 장악한 행태주의 실증주의로 인해 밀려나게 된 것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에 대한 도덕적 규범적 논의와 인간의 지식, 방법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영역까지 협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이다. 개인의 실존적 탐구를 수반한 규범적 논의가 Puzzle을 푸는데 있어서 보다 다양한 변수들을 다루고, 기존의 담론과 방법론에 대한 큰 폭의 도전을 유용케 했다면, 행태주의 실증주의 연구들은 체계적인 이론과 경험적 검증이라는 맥락 하에 연구의 대상을 국가나 조직, 구조와 같은 개념/틀로 간결화시키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연구틀 밖에서의 도전을 보다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즉, 연구의 대상이라는 것이 추상적이고 검증되지 못하는 것들을 배제한, 검증가능한 것들로 연구의 범위가 좁혀지는 것 같다. 특히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현재 실증주의 연구에서 다뤄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인 듯 하다. 무엇보다 이것이 추상적이고 검증하기 어렵다는 측면, 또는 케네스 월츠가 <인간 국가 전쟁>에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다 라는 명제 같은 것은 너무 보편적이어서 특정한 현상이 왜 특정시기에 일어났는지, 전쟁의 원인과 예방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설명변수가 되기엔 부족하다는 측면에서 배제되어온 듯 하다.

하지만 이번 여름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시작으로 제대로 읽어보기 시작한 고전들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는 그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문제, 또는 새로운 사회를 구상하고자 하는 노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스미스의 경우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만 상정하고 있는 홉스나 맨더빌과 달리 ‘아무리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행복과 불행에 동감(sympathy)하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개인적인 이익추구는 긍정적인 것이며 사회의 이익으로 환원된다는 스미스의 자유주의의 기반이 된다. 플라톤의 국가론의 경우에도 인간의 타락성, 부패성에 대한 논의와 정의란 무엇이고, 왜 인간이 사회적 도덕적 의무를 실행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기반으로 ‘철인정치’, ‘철학자왕’ 같은 이상적인 국가론을 정립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신학자이자 국제정치학자, 현실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인홀드 니버의 경우 그의 인간본성론은 신학의 관점에서 출발해 그의 국내외정치, 기독교 현실주의라 불리는 그의 사상의 대전제가 되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기제가 그나마 어떻게 이러한 권력추구적인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고 평화를 유지시키는지에 대한 그의 결론을 설명하는 핵심이 된다.

실증주의가 주장하고 있는 인간의 지식의 가치중립성과 객관성, 검증가능성에서는 이런 인간의 본성이란 규범적 논의는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될 것이다. 하지만 고전들과 특히 고전현실주의의 저서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점은, 첫째, 무의미할지언정 이런 규범적인 탐구야 말로 연구자의 사고력, 논리력, 연구와 사회에 대한 이해와 열정을 배가시킨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실증주의연구자들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과 이상적인 사회 등에 대한 생각은 나름대로 전제되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 아닌가 이다. 즉, 연구자가 문제의식을 찾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가 속해있는 시간과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규범적 논의가 투영되는, 불가피한 간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규범적 영역으로의 쏠림이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철저한 자기비판력이 없는 규범주의는 곧 독선이고 절대주의의 영역과 맞닿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고전과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를 탐구해보고 비판적인 성찰력을 기르는 것이 사회과학자로서의 사고력과 연구윤리를 고양시키는 최고의 자양분이라는 배움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연구주제를 찾는 여정이 ‘so what’이라는 벽에 막혀있었는데 – 즉, 이 문제를 풀어서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 그 가치를 모르겠는 것 – 바로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큰 열쇠가 이런 규범적 철학적 영역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립해보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다시 말해, 실증주의적 방법으로 현실이 어떠한지를 연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것이 현실이 어떠해야 하는지 라는 규범적인 상상과 연결해서 연구에 대한 가치와 열정을 찾아보는 것이다. 실증적 사회학의 아버지인 베버가 말한 규범적 영역과 과학의 영역을 양립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말이다 – ‘스스로가 현실 세계에 중요한 함의를 가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믿음이 연구에 의미를 부여해 주고, 그 의미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유지시킨다. 게다가 가치의 측면과 도덕적 헌신의 측면에서 유의미한 연구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중립성, 엄밀성 그리고 객관성을 따질 수 있다’ (Weber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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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출발은: 최근에 읽게 된 책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 (Passion, Craft, and Method in Comparative Politics)>. 미국의 두 학자가 1910-40년대에 출생한 미국학자 15명에게 박사과정시절과 연구주제 등 인간적 차원의 내용을 인터뷰한 내용을 집대성한 것으로, 이 학자들의 연구과정을 살펴보면 실증적 이론과 규범적 이론을 구별하는 것이 과학적인 객관성을 얻는 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오히려 동시에 실증적인 동시에 규범적인 연구를 추구해서 연구를 발전시킨다는 것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실증적인 영역과 규범적인 영역이 연구자에게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고민이 되고… 규범적인 영역이 연구동기를 찾는데서 뿐만 아니라 방법 자체를 제고하는데 있어서 갖는 함의가 무엇일지 따져보게 되고,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연구자에게 있어서 이 두 영역이 구분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연구자가 도덕 규범을 고려하는 것과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 등 객관성에 충실하는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인 것. 연구동기와 과정부분이 헷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