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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oughts

이삼성 (1995) - 지적경향

"어떤 역사적 실험의 실패는 역사 속에서 전개되었던 혁명적 변화의 노력들에 대한 지적 냉소주의를 낳는다.
그것은 곧 현실의 역사전개 속에서 민중의 역할을 극소화하고 지배집단의 역사적 결정력과 그들의
창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역사해석을 강화하게 된다. 그것은 많은 경우 현실을 어떻게 세련되게
묘사할 것인가를 둘러싼 학문적 경쟁과 함께 현실에 대한 긍정적 성찰을 낳는다.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the real is the rational)이라는 헤겔의 유명한 말은 현실 자체가 이성임을
강조하는 우파적 경향과, 이성을 바탕으로 현실이 겪게될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좌파적 경향을
동시에 낳았던 것은 주지하는 바이다. 오늘 우리의 학문적 경향은 그 중에서 전자인 우파적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에 걸친 한반도의 역사에서 현실의 전개가 내포한 합리성과 불가역성을 강조
하는 반면에, 현실의 초월을 추구했던 이성의 논리의 실패와 좌절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가혹한
평가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쪽이든 편향된 인식은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현실과 이성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의
차원이 생략되고 또 하나의 새로운 일반적 편향, 지적 획일성의 문제를 낳고 있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부작용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지적 경향은 인간과 역사의 미래에 가능한 어떤 이성적 본질의 현실화를 추구하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혁명적 성격의 프로젝트들에 관해, 그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러한 노력들이 갖는
도덕성까지도 회의하고 비판하는 경향을 내포한다. 곧 헤겔의 우파적 계승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한국을 포함한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지적 경향은 대안과 변화의 전망이
상실된 '실증주의' 시대의 그것에 다름아닌 것처럼 보인다. 변화의 전망 상실은 현실의 질서를 정당화하고
민중의 피동성을 자연법칙으로 받아들이며 격변의 시대는 일시적인 병리현상으로 이해하는 역사관을
풍미하게 된다. 관조의 커튼을 친 현실주의적 적응의 지식산업만이 남게 된다."
- 이삼성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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