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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Thoughts

첫소감... 대학(大學)

개개인이 스스로를 늘 경계하고 아는 것에 극진하게 됨(자기수양)을 시작으로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고 나아가 평화(평천하)가 이루어진다는 대학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다스림에 대하여 높은 기준이 있고 개인을 넘어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회를 이루고 국가가 이루어질 때의 지도자상과 치국에 대한 대학의 이상은 현대 사회에서 닿기 어려운 유토피아 같다. 

이상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한 경쟁(합리적 이성)과 부의 축적을 여기 대학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덕'(도덕성, 윤리)이란 가치와 철저히 분리하고 독려하는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사회에서 대학이 밝히는 '자기 절제로부터의 실천'을 불러오기란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대학이 개인이 아닌 '지도자'를 위한 가르침이었다면 (대학이 '통치자'를 위한 학문이었다는 설과 '인격자'를 위한 학문이란 설로 나뉜다고 한다) 왕조체제가 아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기수양을 완성한 소수가 아닌 다수가 모여야 대학이 말하는 화평이 가능해지는 것인데 이또한 유토피아가 아닐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가 대학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내가 느낀바로는 가장 우선적으로 이러한 이상이 불러일으키는 긍정적인 기운인 것 같다. 자신을 다스리는 것과 나아가 조화로운 나라를 이루는 것에 대한 대학의 이상은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상상함으로써 현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주는 듯 하다.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우리나라 사회를 보니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이상주의에 대하여 필요이상으로 박하고 비관적이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주의적인 사고와 실현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이상주의라고 일컬어 지는 평화와 협력, 화해, 화합이란 조화로운 가치들에 대한 대국민적 합의가 소진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가치들을 우리는 쉽게 폄하할 뿐더러 잊기 시작하였는데 4박 5일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시 상기시켜준 평화라는 가치의 힘은 (짧은 허상일지언정) 이러한 이상에 대하여 다시금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 사회가 꿈과 비전, 상대에 대한 선이 필요이상으로 부족한 현실주의과다-이상주의결핍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평화라는 한가지의 가치를 다수가 쫓는다는 것이 이러한 가치가 실현되는 방법에 따라 차이를 인정하고 다수의 자유로운 참여와 실천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한쪽으로 치우치는 포퓰리즘으로 변질되어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이상주의, 공산주의, 히틀러의 이념, 이외에 많은 혁명가들의 이상 모두가 보다 나은 세상, 사회, 궁극적으로 평화를 추구한다는 명목하 만들어져 대중들이 따르던 것들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아 편을 가르지 않고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비전/이상/체제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민주주의가 그 답인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보다 나은 민주주의... 


지도자상

- 전3장 中 -

"詩云 穆穆文王이여 於緝熙敬止라 하니
(시운 목목문왕이여 오즙희경지라 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위인군엔 지어인하시고 위인신엔 지어경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위인자엔 지어효하시고 위인부엔 지어자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 
(여국인교엔 지어신이러시다)

"『시경』에 "심원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 빛나며 공경하게 머무셨네."라고 하였으니 문왕께서는 임금이 되어서는 어짊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서는 공경함에 머물고, 아들이 되어서는 효도에 머물고, 부모가 되어서는 자애로움에 머물고, 나라의 사람들과 사귈 때에는 믿음에 머무르셨다."

"시(詩)'는 『시경』에 「문왕(文王)」편이다. '목목(穆穆)'은 깊고 멀다는 뜻이다. '오(於)'는 감탄사이다. '즙(緝)'은 계속하는 것이다. '희(熙)'는 빛이 밝음이다. '경지(敬止)'는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멈추는 것에 편안한 것을 말한다. 이 시를 인용하여 성인의 멈춤은 지선이 아닌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이 다섯 가지는 바로 조목 중에서 큰 것이다. 배우는 사람은 이것에 대해서 정밀하고 은미한 이치를 연구하고 또 유추하여, 그 나머지를 극진하게 하면 세상사에 대해서 모두 멈출 곳을 알아 의심이 없을 것이다."


"詩云 瞻彼淇澳한대 菉竹 猗猗로다 有斐君子여
(시운 첨피기욱한대 록주의의로다 유비군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라 瑟兮 僩兮며 赫兮喧兮니
(여절여차하며 여탁여마라 슬혜한혜며 혁혜훤혜니)

有斐君子여 終不可諠兮라 하니
(유비군자여 종불가훤혜라 하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脩也요
(여절여차자는 도학야요 여탁여마자는 자수야요)

瑟兮僩兮者는 恂慄也요 赫兮喧兮者는 威儀也요
(슬혜한혜자는 준율야요 혁혜훤혜자는 위의야요)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니라."
(유비군자종불가훤혜자는 도성덕지선을 민지불능망야니라)

"『시경』에서 말했다. "저 기수 물가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빛나는 군자여! 톱으로 자른 듯하고, 대패로 미는 듯 하며, 망치와 정으로 쪼는 듯하고, 모래로 가는 듯하구나. 엄밀하고 굳세며, 밝고 성대하니, 빛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구나." 톱으로 자른 듯하고 대패로 미는 듯하다는 것은 학문을 말한 것이요, 망치와 정으로 쪼는 듯하고 모래로 가는 듯하다는 것은 스스로 닦는 것이요, 엄밀하고 굳세다는 것은 두려워함이요, 밝고 성대하다는 것은 위엄 있는 모습이요, 빛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대한 덕과 지극히 선한 것을 백성이 잊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자신과 가정을 다스리는 것부터의 치국

- 전9장中 -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소위치국이 필선제기가자는)

其家를 不可敎而能敎人者 無之하니
(기가를 불가교이능교인자 무지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고로 군자는 불출가이성교어국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요 弟者는 所以事長也
(효자는 소이샤군야요 제자는 소이사장야요)

慈者는 所以使衆也니라."
(자자는 소이사중야니라)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자기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자기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면서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서도 나라에 가르침을 이룬다. 즉, 효도는 군주를 섬기는 도구가 되고, 공손함은 어른을 섬기는 도구가 되며, 자애로움은 백성을 부리는 도구가 된다."

"몸이 닦여지면 집안사람을 교화시킬 수 있다. 효도와 공손함과 자애로움은 몸을 닦고 집안을 교화시키는 방법이다. 그러나 나라의 임금을 섬기고 어른을 섬기고 백성들을 부리는 도리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곧 위에서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면 교화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유토피아, 평천하에 대한 대학의 이상과 같이 개인 스스로에 대한 다스림의 기준 또한 매우 높다. 

- 전5장中 -

"閒嘗竊取程子之意하여 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는
(간상절취정자지의하여 이보자왈 소위치지재격물자는)

言欲致吾之知인댄 在卽物而窮其理也라 
(언욕치오지지인댄 재즉물이궁기리야라)

蓋人心之靈이 莫不有知요 而天下之物이 莫不有理언마는 
(개인심지령이 막불유지요 이천하지물이 막불유리언마는)

惟於理에 有未窮이라 故로 其知有不盡也니
(유어리에 유미궁이라 고로 기지유부진야니)

是以로 大學始敎에 必使學者로 卽凡天下之物하여
(시이로 대학시교에 필사학자로 즉범천하지물하여)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하여 以求至乎其極하나니 
(막불인기이지지리이익궁지하여 이구지호기극하나니)

至於用力之久而一旦에 豁然貫通焉이면
(지어용력지구이일단에 활연관통언이면)

則衆物之表裏精粗가 無不到하고
(즉중물지표리정조가 무부도하고) 

而吾心之全體大用이 無不明矣리니
(이오심지전체대용이 무불명의리니) 

此謂物格리며 此謂知之至也니라."
(차위물격이며 차위지지지야니라)

"이른바 앎을 극진하게 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고 한 것은, 나의 앎을 극진하게 하고자 하는 것은 사물에 나아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대개 마음의 신령함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으며, 천하의 모든 사물은 각각 이치를 소유하고 있지 않은데, 오직 그 이치를 궁구하지 않기 때문에 앎이 지극해지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학을 처음 가르칠 때는 반드시 학자들에게 천하의 모든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더욱 궁구해서 극진한 데까지 이르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힘쓰기를 오래하여 하루아침에 환하게 깨달아 모두 알게 되면,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한 것과 거친 것에 이르기까지 도달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큰 쓰임이 밝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사물의 이치에 도달했다고 하며, 이것이 앎을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 전6장中 -

"所謂誠其意者는 毋自欺也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소위성기의자는 무자기야니 여오악취하며 여호호색이)

此之謂自謙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차지위자겸이니 고로 군자는 필신기독야니라)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나쁜 냄새를 싫어하듯 하고, 좋은 빛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다. 이것을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음을 삼긴다."

"'성기의자(誠其意者)'는 스스로 닦는 것의 으뜸이다. '무(毋)'라는 것은 금지하는 말이다. '자기(自欺)'라고 말한 것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마음이 발현될 때 아직 진실하지 못한 것이다. '겸(謙)'은 '쾌(快)'와 '족(足)'과 같은 뜨싱다. '독(獨)'이라는 것은 남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 혼자 아는 곳이다. 스스로 닦고자 하는 사람은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마땅히 실제로 그 힘을 써서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한다. 가령 악을 미워하기를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것처럼 하고,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여 모두 힘써서 악은 결단하여 버리고 선은 구하여 반드시 얻어 스스로 자신에게 만족하게 해야지 한갓 구차하게 외면적인 것을 따라 남을 위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진실되고 진실되지 못함은 남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자기만 혼자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기에서 자신을 삼가여 그 기미를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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