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리베라전 감상

[생각]Thoughts 2015. 7. 12. 16:06

대학교때 접한 예술가 중 강렬한 임팩트를 느꼈던 사람이 바로 프리다 칼로다. 우습게도 그 이유는 첫 번째가 개인적으로 쇼킹했던 그녀의 일자형의 숱 검둥이 눈썹이었고, 두 번째가 그 다음 알게 된 그녀의 초창기 작품들에 담긴 스토리였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겪은 전차사고 이후 서른 번이 넘는 재수술을 하면서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그렸던 것들이다. 사고 당시 그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그녀의 몸은 거의 으스러졌고, 버스의 쇳조각이 그녀의 상체부분을 뚫고 들어가 자궁을 관통하였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녀의 작품 중, 하얀 침상을 둘러싸여 분리되어 그려진 그녀의 신체부위, 특히 자궁의 묘사 등에 담긴 그녀의 고통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Frida Kahlo, "Hospital Henry Ford" (1932)


그리고 셋째는 그녀와 디에고 리베라의 스토리였다. 그녀가 말했듯 그녀의 인생엔 두 번의 대형사고가 있었던 셈인데, “하나는 전차 사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당시 이미 세계적인 민중화가로 알려져 있던 디에고 리베라는 그녀를 만난 이후 사랑에 빠져 스물한 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리베라는 그녀를 두고 잦은 외도를 하여 결국 그녀의 결혼생활은 맞바람을 포함한 이혼과 재결합의 반복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이것은 전차사고와 빗댈 만큼의 고통이었겠지만 바로 여기에서 또 한번 그녀의 작품세계가 점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의 그런 고통을 다시 한번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면서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미스터리한 배경 속에 그려진 자신의 얼굴 위에 리베라의 얼굴이 겹쳐져 있거나 원숭이에 둘러 쌓여 있는 것, 자신의 얼굴을 한 사슴이 10개의 화살에 꽂혀있는 것 등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Frida Kahlo, 'Self Portrait as a Tehuana'(1943)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Monkeys'(1943)


Frida Kahlo, 'The Wounded Deer'(1946)


이번 전시에 게재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디지털 프린트 버전)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세계가 폄하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의 섭타이틀인 프리다 칼로와 멕시코가 사랑한 열정의 화가를 보면서 바로 프리다 칼로의 대형사고를 떠올리긴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벽화들은 20세기 초반 멕시코 사회의 혼란 속에서 국민들의 단결을 모색할 수 있는 멕시코의 벽화운동-대중문화운동으로 큰 역할을 하였고 이후 러시아로 건너가 활동한 그의 작품들은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냈다.

이렇게 다시 접하게 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들을 보면서 새로 느낀 것이 너무도 많다. 대학교 시절 지금보다도 훨씬 무지했을 때는,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들은 엄청난 독창성이라기 보다는 당시 시대상을 표현하고자 했던, 너무 많은 것을 한 곳에 모두 담으려는 듯한, 고전주의 미술같이 뭔가 고리타분하다는 생각만 했다. 아니면 종군기자들이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들에 우연히 담긴 엄청난 시대상처럼, 어떻게 보면 그저 시대를 잘 만난 운 좋은 화가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십자로의 남자’(1934, Palacio de Bellas Artes)를 기점으로 리베라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 180도 바뀌어버렸다. 벽화 가장 중심부엔 그려진 두 타원은 과학과 산업화, 이를 통한 인간의 진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주변부에 그려진 인물들은 대부분 이 중심부를 바라보고 있어서 관람자의 이목을 다시 이 중심으로 쏠리게 하고, 좌우의 인물들의 대립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만든다. 그림의 좌의 인물들은 부르주아사회의 어두운 면을, 오른쪽의 인물들은 노동자들과 사회주의를 묘사하고 있다. 특히 오른쪽 구석에 리베라가 그린 마르크스, 엥겔스, 트로츠키 등의 그림은 조금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유머러스 하기까지 하다.


십자로의 남자’(1934, Palacio de Bellas Artes)


여전히 나는 너무 추상적인 그림들은 너무 어렵고, 리베라처럼 직설적이고 서술적인 그림들은 단조롭거나 조금은 단순한 면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 둘 보다는 그 중간쯤에 있는 초현실주의 그림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인 선호와는 별개로 이 작품의 시대상과 리베라의 세계관의 정점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공부를 한 이후에 보는 그림에 대한 내 자세는 매우 달라지지 않은가 싶었다. 또한 작가의 세계관과 나의 생각이 동일하지는 못할지언정, 이런 작품을 보면서 예술가의 작품세계와 사회과학자들의 연구의 폭이 그렇게 넓은 것이 아니란 것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사회과학을 예술로 표현해 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는, 이제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목적이 있는 삶. 공부. 예술나를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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